[칼럼] 소설 ‘화장', 영화 '화장'
[칼럼] 소설 ‘화장', 영화 '화장'
  • 엄정권 기자
  • admin@bkn24.com
  • 승인 2013.10.12 12: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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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죽음을 “운명하셨습니다”라는 당직 수련의의 말로써, 제삼자의 직설화법으로 시작하는 김훈의 소설 ‘화장’.

2004년 이상문학상을 받은 김훈의 대표작 중 하나다. 김훈은 형용사 부사를 배제한 채 서사와 서정을 넘나드는 독특한 문체로 우리 문단의 축복이라는 평을 듣는다.

그의 대표작 ‘칼의 노래’ 첫 문장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에서 꽃‘이’로 할지 꽃‘은’이라고 할지 일주일을 고민했다고 한다. 문장 수업 때 법조문을 텍스트로 삼았다고 한다. 그래서 불필요한 형용사 부사를 구사하지 않는다.

소설 ‘화장’이 영화로 만들어진다. 감독은 임권택, 주인공 ‘나’에는 안성기가 캐스팅됐다.

▲ 10월 4일 영화 '화장' 제작 발표회. 왼쪽부터 감독 임권택, 배우 안성기, 원작자 작가 김훈씨. 사진=오마이뉴스

수년에 걸친 아내의 투병에 심신이 지친 소설 속 ‘나’는 아내의 죽음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며, 신입사원 추은주를 향해서는 연모의 정을 쌓아가는 다소 속물적인 55세(당시 작가 나이와 같다)로 회사를 위해 현실과 타협하고 불의한 일도 서슴지 않는 재벌급 화장품 회사 오 상무다.

오 상무 직장이 바로 화장품 회사이기에 관심을 끈다. 소설 ‘화장’은 제목이 한글이다. 죽었음을 확인하는 화장(火葬)과 살아 있음을 드러내는 화장(化粧), 중의를 내포하는 듯하다. 바로 아내의 죽음(화장)과 추은주를 향한 열정의 짝사랑, 그리고 밥벌이로 떼려야 뗄 수 없는 화장품이 담겨 있다.

김훈의 관찰력은 현미경이다. 특히 추은주 묘사가 그렇다. -빗장뼈에서 위로 솟아오른 당신의 목은 흰 절벽. 음식을 넘길 때마다 흔들리는 당신의 턱 밑의 흰 살. 반팔 블라우스 소매 아래로 노출된 당신의 팔에는 푸른 정맥이 드러났습니다. 당신의 정맥은 먼 나라로 가는 도로처럼 보였습니다-.

관찰력 못지않게 김훈은 화장품 업체 사정에 꽤나 밝다. 아내의 부음을 알릴 곳으로 화장품원료 납품 업체 대표, 용기제조사 사장, 미용기자 등이 포함된다.

화장품 종류에도 훤하다. 기초화장품으로 클렌징로션, 폼클렌징, 스킨로션, 메이크업베이스, 리퀴드 파운데이션, 콤팩트 파운데이션을 열거하고 있다. 또 색조화장품으로 립스틱, 립글로스, 아이섀도, 아이라이너, 마스카라 등을 들고 있다.

기초화장품에 메이크업 베이스, 파운데이션이 포함된 것이 다소 의아하다. 색조로 분류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유행 컬러에 대해서도 울트라 마린 블루, 쇼킹 핑크, 인디안 레드 등이 있다고 설명한다.

놀라운 것은 회사가 여성 질 세척제를 개발하면서 원숭이를 통해 다양한 실험을 하는 가운데 드러나는 문제점을 매우 소상히 독자들에게 알려 주고 있는 점이다.

영업 쪽에서는 지방 대리점 결제는 모두 어음이고 부도율이 3%이며 미수율은 10%이고 지방 대리점이 마진폭 인상을 요구하며 담합하는 모습 등 부정적인 측면도 들춰내고 있다.

있을법한 부정적인 측면은 또 있다. 피부미백제(미백 화장품인듯)가 대량으로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전북으로 출장을 가, 피해자들을 돈으로 진정시키고 소비자단체를 구슬려 고발을 막는다. 마진 인상을 요구하는 지방 총판장을 불러 타협하고 김제에서는 총판장을 불러 룸살롱에서 술판을 벌인다.

오 상무가 여름 광고 이미지 문구 결정을 앞두고 한 말은, 2003년에 쓴 소설이지만, 현재 진행형처럼 들린다. “이 업계에서 건더기와 껍데기가 구별되는 것도 아니고 껍데기 속에 외려 실익이 있는 경우는 흔히 있었다”라고 후배들에 들려준다. 까발리는 듯한 말도 나온다. “화장품은 내면 사업이 아니다. 외면사업이다”

어쨌든 소설 속에서 오 상무 회사는 마린 블루의 아이섀도, 마스카라가 대박이다.

오 상무는 판촉비를 풀어 소비자단체 간부, 광고 매체 간부, 미용 담당 기자들에게 매일 술을 먹이고, 자신은 새로 생긴 주간지 광고담당, 월간지 광고 담당, 부분 모델 매니저에게 그만큼 매일 접대 받는다. 오 상무는 질퍽거리는 마린 블루의 여름이라고 말한다.

영화로 만들어지면 우선 화장품회사 무대는 어디가 될까. 오 상무 회사는 화장품 시장 점유율 1위라고 했다. 다소 부정적인 내용을 고려하면 ‘1위 회사’가 무대를 제공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런 측면들은 어떻게 소화될까. 진지함 속에 속물근성이 묻어나는 안성기의 얼굴에 오 상무가 오버랩된다.

-아름다움을 디자인하는 뷰티코리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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